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紀懷(기회) -鄭士龍(정사룡)-

*설향* 2010. 8. 8. 10:39

(13)  紀懷(기회)   -鄭士龍(정사룡)-

 

四落階蓂魄又盈, 悄無車馬閉柴荊.

사락계명백우영, 초무거마한시형. 

 

(階-섬돌 계, 蓂-명협 명, 달력풀 명, 悄-근심할 초, 조용할 초)

[명(蓂)]; 蓂萊, 중국 요임금 때에 뜰에 났다는 상서로운 풍, 초하루에서 보름까지는 한 잎씩 나고 16일부터 말일까지는 한 잎씩 진다고 한다,

[우영(又盈)]; 다시 차오르다,

[시형(柴荊)]; 시문(柴門), 사립문, 농가의 집,

 

뜰에 명혐 꽃이 네 번 떨어져서 흰달이 또 차는데,

수레와 말이 전원의 생활을 떠들썩하게 하는 일도 없도다.

 

詩書舊業抛難起, 場圃新功策未成.

시서구업포난기, 장포신공책미성. 

 

(抛-던질 포, 포기할 포, 떨쳐버릴 포)

[장포(場圃)]; 곡류를 거두어들이는 뜰, 여기서는 농사일,

[신공책(新功策)]; 새로운 계책, 농사짓는 기술을 익히는 것,

 

시나 서를 하던 옛날 공부도 한 번 놓으면 다시 하기 어렵고,

농사짓는 새로운 일도 생각대로 되지를 않네.

 

雨氣壓霞山忽暝, 川華受月夜猶明.

우기압하산홀명, 천화수월야유명. 

 

(暝-어두울 명)

[홀명(忽暝)]; 갑자기 어두워지다, 비오기 전에 갑자기 어두워지다,

[천화(川華)]; 냇물의 빛, 달빛을 받아서 빛나는 시내,

 

우기가 노을을 눌러서 산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개울 빛이 달빛을 받아서 밤에 오히려 밝도다.

 

思量不復勞心事, 身世端宜付釣耕.

사량불부노심사, 신세단의부조경. 

 

[조경(釣耕)]; 낚시와 농사짓는 일,

 

생각하는 일조차 다시는 내 마음을 수고롭게 하지 못하고,

이 몸은 오직 밭 갈고 낚시질이나 해야지.


작자 소개

① 정사룡(鄭士龍)은 조선 중기의 문인으로 자(字)는 운경(雲卿_이고, 호(號)는 호음(湖陰)이다.

② 정사룡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까지 올랐으나 李樑(이량)이 제거될 때 일당으로 몰려 관직에서 쫓겨났다.

③ 정사룡은 관료로서 대단히 성공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는 貪虐(탐학)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④ 시문(詩文)과 음율(音律)에 대단히 능했으며 글씨도 잘 썼다고 한다. 문집으로는 「호음잡고(湖陰雜稿)」가 전한다.


작품해제(作品解題)

① 정사룡의 시는 말을 잘 다듬어서 쓰면서 천착력이 뛰어난 시상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솜씨를 가졌다는 평을 듣는다. 이 시도 정사룡의 그러한 시풍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② 이 시는 세상의 온갖 고난을 다 겪고 초탈의 경지에서 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복을 떨쳐입고 하늘에 올라 李白의 소식을 물어보리라고 한 <후대야좌(後臺夜坐)>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③ 기련(起聯)은 한적한 시골에서 조용히 앉아서 세상사를 생각하면서 지은 것이다. 뜰 앞에는 잎이 떨어지고 집 앞에는 거마(車馬)가 다니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고 할 수 있다.

④ 승련(承聯)에서는 학자로서의 구업(舊業)은 떨쳐버리기가 어렵고, 농사일은 아직 손에 익지 않아서 뾰쪽한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세상을 피해 살면서도 세상에 나가고 싶은 생각을 아주 조금 내보인 구절이다.

⑤ 전련(轉聯)은 신의 도움 없이는 쓸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을 들은 곳이다. 비 기운이 노을을 눌러서 산이 갑자기 어두워지는데, 시냇가의 물빛은 달빛을 받아서 밤인데도 오히려 밝기만 하다는 것이다. 뛰어난 천착력과 섬세한 기교가 가장 돋보이는 구절이다. 갑자기 어두워 오는 하늘과 月光을 받아서 오히려 빛나는 시내의 대비는 어떤 사람도 흉내 내기 어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⑥ 결련(結聯)에서는 다시는 마음 쓰는 수고를 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서 몸을 오로지 낚싯대에 맡기고자 한다고 하면서 세상을 떠난 이러한 생각이 마지막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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