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의 선제골이 터진 순간, 머리털이 쭈뼛 섰다. 평균 신장이 큰 그리스를 맞아 우리는 세트피스 훈련을 집중적으로 했다. '약속된 플레이'를 위해 같은 장면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정수가 골을 넣은 건 딱 우리가 훈련한 그대로였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마음 저 구석에서는 "아, 내가 부상을 당하지만 않았어도 저 자리가 내 자리였는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들었다.
정수는 대표팀에서 내 룸메이트다. 정수(가시마)와 나(교토)는 일본 프로축구에서 활약하는 터라 워낙 가까운 사이이기도 하다. 정수는 장난칠 때는 귀엽게 장난도 잘 치지만 평상시에는 얌전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그렇게 대담하고 침착하게 공을 밀어넣은 데는 그의 차분한 성격이 한 몫을 했을 거다. 남들은 "수비수인 이정수가 첫 골을 넣어서 놀랐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전혀 놀랍지 않은 결과다. 세트피스 훈련을 많이 한 터라 우리끼리는 어느정도 예상을 한 시나리오다.
골이 들어가기 전 상대 세트피스 상황에서 위험한 장면이 연출돼 가슴이 철렁했는데, 위기를 모면한 직후에 선제골이 터졌다. 그 뒤부터는 경기를 정말 편안하게 봤다. 우리 선수들은 여유가 생겨서 본인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했다. 반면 그리스는 너무 이른 실점 탓에 우왕좌왕하고 조직력을 상실했다.
어쨌든 그리스전은 끝났다. 이제 그리스는 잊고 아르헨티나에 전념할 때다. 우리 경기 뒤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의 경기를 보니 역시 강팀은 강팀이었다. 개인 기량도 넘치고, 수비도 그리스처럼 따로 놀지 않았다.
공격할 때는 화끈하게 공격을 하는데, 수비할 때는 라인이 갖춰졌다. 메시도 '명불허전'이었다. 스피드가 워낙 빠르니 우리가 협력 수비를 잘 해야할 것이다.
아르헨티나를 맞아서도 우리는 그리스전처럼 역습 찬스를 노리게 될거다. 수비라인부터 체계적으로 올라오는 조직력을 예리하게 가다듬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아르헨티나전와의 경기에서 우리는 쉽게 이기지도, 그렇다고 쉽게 지지도 않을 것 같다. 기껏해야 한두골차로 승부가 갈리지 않을까. 그리스전에서 박주영의 골을 기대했는데, 아쉽게 터지지 않았다. 그래도 주영이 컨디션이 좋은 만큼 아르헨티나전에서 다시 한 번 한 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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