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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예척보도,중계편식

*설향* 2008. 8. 13. 18:40

 

 

  베이징 올림픽이 초반전을 마치고 중반전에 들어섰습니다. 대한민국 팀은 8월 9일부터 12일까지 나흘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며 하루하루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는데요. 연속 금메달 기록은 아마도 13일부터 깨질 듯 합니다. 한국이 금메달 5개로 3위를 달리고 있는 현재, 금메달 보다 더 많은 6개의 은메달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의 활약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 위주로 언론 보도와 뉴스가 나가면서, 2등에게도 관심과 축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급기야 성적에 관계 없이 최선을 다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을 네티즌의 손으로 뽑을 수 있게 해달라는 아고라 청원까지 등장했네요.

 

  사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들은 많은 화젯거리와 상품성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나라 수영 역사 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안겨준 박태환 선수에 대해 국민들이 갖는 애정과 기쁨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언론의 외면과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따내며 눈물을 흘린 최민호 선수의 모습도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10m 경기에서의 은메달에 이어 50m 남자 공기 권총에서 금메달을 따낸 진종오 선수의 긍정적인 태도와 여유있는 모습도 화제를 낳았습니다. 또 올림픽 6연패의 금자탑을 쌓은 여자 양궁 선수들과 올림픽 3연패를 이룬 남자 양궁 선수들은 양궁 전종목 석권의 기대를 높이며 축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선수들 국민들에게는 준 기쁨과 자부심은 금메달에 못지 않은 것 같습니다. 155cm의 단신을 극복하고 이탈리아 선수 3명의 틈바구니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따낸 남현희 선수는 여자 펜싱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한국 유도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 왕기춘 선수와 김재범 선수의 선전과 투혼도 국민들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박태환 선수의 200m 자유형 은메달은 금메달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큰 수확이었고, 진종오 선수의 은메달 역시 금상첨화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여자 역도 53kg 급에서 윤진희 선수가 따낸 은메달 역시 가뭄의 비처럼 반가운 소식이었고, 남자 레슬링 55kg급 박은철 선수의 동메달도 위기 의식에 빠진 한국 레슬링의 자존심을 세워주었습니다.

 

  사실 시청자들이나 누리꾼들이 '네티즌상'을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의 성과가 가치가 없다거나 행운이라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네티즌상'이나 '시청자상' 같은 것을 만들자고 하는 것은, 해도해도 너무한 방송사들의 행태 때문이겠지요.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방송사들은 '유망주'나 '기대 종목'을 들먹이며 '예측 보도'를 남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섣부른 예측 보도가 '유망주'로 지목된 선수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었고, 외면 받는 선수들에게는 좌절감을 심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올림픽에서 메달과 성적이 없다면 다소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림픽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것'으로 만든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무척 커 보입니다.

 

 

 

  공자 말씀에 '아는 것이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런데 즐기기 위해서는 좋아해야 하고, 좋아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합니다. 올림픽을 관전하거나 시청하는 국민들이 올림픽의 진 면모를 즐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각 종목들의 룰이나 요체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방송사들은 '누가 금메달을 딸 것 같다'라거나 '누가 유망하다' 하는 식의 예측 보도 보다는, 이 종목은 어떤 룰이 있고 또 다른 종목은 어떤 점에 주안을 두고 관전을 해야 하는가 같은 것들을 먼저 알리는 데 주력해야 했습니다.

 

  지금 대다수의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는 종목이 어떠한 룰과 재미를 갖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승부에만 목숨을 걸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은 종목은 외면받고 있으며, 우리 선수가 탈락하면 그 종목에 대한 관심도 끝나는 악습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지 못하니 좋아할 수가 없고, 좋아할 수가 없으니 즐길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즐길 줄 모르는 시청자와 시청자의 시선 사로 잡기에만 혈안이 된 방송사, 메달과 성적에만 관심을 보이는 언론이 삼위일체가 되어 조금은 맥빠지는 올림픽 중계가 되고 맙니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네티즌 상'과 '시청자 상'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입니다. 우리 선수가 나오지 않아도 보고 싶은 경기가 있고, 방송사의 생각과는 달리 개인적으로 더욱 더 관심이 가는 경기가 있을 것입니다. 지난 11일 남현희 선수가 출전한 펜싱 여자 플뢰레 준결승 시합이 그 예입니다. 저는 남현희 선수의 준결승 결과가 더 관심이 갔지만, 방송국에서는 사전 양해도 없이 왕기춘 선수의 결승전으로 채널을 돌려 버렸습니다. 시청자로서는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송사들은 제발 '순환 중계'의 원칙을 잘 지켜주었으면 합니다. 금메달이 달린 경기가 중요하다고는 해도 시청자의 선택권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선수들의 결승전처럼 중요한 경기도 방송국들 스스로 자율적으로 순환 중계를 해야 시청자들의 선택권이 보장받고 올림픽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언론이 관심과 재미, 심지어 평가까지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편식을 부추기는 행태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합니다. 또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예측 보도를 남발하여 선수들에게 부담을 주고 기를 죽이는 잔인한 일도 더는 없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은 계속해서 언론의 행태에 이의를 제기하고 반기를 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