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p317.tistory.com

***음악이 있는곳***/노동 요

정선민요

*설향* 2008. 7. 10. 14:30

정선민요

노동요

정선은 예나 지금이나 농사나 주업이었으므로 농업과 관련된 민요, 특히 밭농사에 관련된 민요가 많다. 지형적으로 보더라도 가파른 산이 많고, 밭 또한 이러한 산비탈을 일구어 경작을 했기에 밭농사요는 <이랴 소리> <괭이소리> <아라리> 등이 다양하게 분포하는데 반해 논농사요는 모를 심을 때 부르는 <아라리>를 제외하곤 논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에서조차 제대로 확인할 길이 없었다.


농업노동요 가운데 <이랴 소리>는 지형의 특성상 밭농사가 주업이 되다시피 한 정선에서 특징적으로 분포하고, 지금도 그 필요성에 의해 기능과 함께 전승되는 민요이다.

<이랴 소리>는 똑같은 밭이라고 해도 경사가 심하지 않은 춘천, 횡성, 홍천, 양구 등, 영서 북부지역의 밭에서 소 두 마리를 모는 겨리소 소리가 분포되어 있지만, 정선 지방에서는 호리소 소리가 대부분이다. 화전으로 산을 일구어 경사가 심한 비탈 밭에 소 두 마리를 나란히 몰면서 밭을 갈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소로 밭을 갈면서도 일정한 가락을 갖는 소리를 즐겼다고 하는 사실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를 부리는 사람이 어떤 음악적인 선율을 중요시했다고 하기보다는 옛날부터 부엌 옆 한 쪽에 외양간을 두고 생구(生口)라고 해 한 식구처럼 여긴 소와 대화를 하듯 한데 어우러져 호흡을 맞춰가며 일의 버거움을 덜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밭농사의 대표적인 <이랴 소리>는 아직까지 정선 곳곳에서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필요에 의해 기능이 살아있는 민요이긴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굴삭기와 트랙터 등이 그 기능을 대신 하면서 점점 현장에서 사라져가고 밭을 떠난 노인들에 의해 더 쉽게 조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밭을 일굴 때 부르는 소리인<괭이소리>는 비탈진 돌밭을 여럿이 함께 괭이로 일구며 선입 후 제창 방식으로 불렀던 소리다. 묘를 다질 때 부른 소리인 <달구소리>와 운율이 유사한 이 소리는 지금도 정선읍 가수리, 귤암리, 북면 여량리, 임계면 봉정리 등, 분포가 한정되어 있다.


<이랴 소리>와 <괭이소리>, 그리고 밭을 맬 때 부르는 <아라리>는 정선 지방에서 봄/여름으로 일상적으로 불러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밭 매는 소리는 <아라리>를 제외하곤 별다른 것을 찾을 수 없다. 밭을 맬 때는 이웃 사람들이 함께 품앗이를 할 때가 많았다. 이때는 <아라리>를 돌아가며 부르면서 일의 힘겨움을 덜었다. 그러므로 정선지역의 대표적인 밭 매는 소리는 <아라리>로 보아야 한다.


정선이라는 지역성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밭을 매면서 부르던 <아라리>는 최근 들어 일손의 부족에 따른 타 지역 일꾼의 집단적인 유입과 제초제등의 사용으로 인한 기능의 변화와 상실 등으로 인해 그리 활발한 현장을 예전만큼 찾을 수 없다.


밭농사에 따른 노동요 외에 정선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반영되어 있는 소리는 산에서 벌목을 해 나르는 임산노동요와 집을 짓고, 때론 뗏목으로 엮어 한강을 통해 운송하는 과정을 통해 발달한 운수노동요다.

정선의 노동요 가운데 밭농사에서 생성된 소리들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을 이루는 소리가 바로 산에서 벌목을 해 옮기는 작업과 관련된 소리인 목재생산요들이다.

나무내리는 소리인<어려라차 소리>는 선입후제창의 소리로 산에서 벌목한 통나무들을 산 아래로 끌어서 내려 보내며 부르는 소리다. 앞소리꾼이󰡐�쓰루’󰡐�(우리말로 ‘황새목’)라는 도구를 가지고 나무 끝을 들어 방향을 잡으며 소리로 매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도비’(우리말로‘깍장쇠’)라고 하는 도구로 나무를 찍어 끌어당기면서 함께 뒷소리를 받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


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산으로 올라가면서 베어놓은 나무를 한 곳에 모으고 나면 계곡을 따라 통나무를 둥글게 깔아 만들어 놓은 통 길을 이용해 산 아래 집 목장으로 내려 보내게 된다.

조선 개국이후부터 강원도에서 나는 재목이 뗏목으로 엮어져 한강을 통해 내려갔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정선, 인제 지역의 많은 소나무들이 베어져 한양에 당도했고, 이에 따라 벌목이 성행했던 시기를 알 수 있다. 그 후 일제강점기시대에 일본사람들이 많은 나무를 베어 갔으며 목도에 쓰이는 거도와 같은 각종 톱과 같은 연장들이 이때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벌목 작업은 옛 문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지만 <어려라차 소리>가 경복궁 중수 때부터 불러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일설에는 일제강점기시대에 들어온 소리로 보기도 하는데, 발맞춤이 요구되는 집단 노동요가 2박자 계열의 규칙적인 반복형태의 리듬을 갖고 있는 것이 이러한 추측을 낳지 않았나 생각된다.


<어려라차 소리>는 해방 이후 제무시 트럭(GMC 트럭)이 등장해 운목의 기능이 대신하게 되면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산이 험하고 가파른 정선 산간지방에선 통 길을 이용하는 운목이 아직 남아있어 <어여라차 소리>가 불러진 듯 하지만 예전같이 산을 쩡쩡 울리던 소리는 누에 띄지 않은지가 오래다. <어여라차 소리>는 노동력의 노령화로 인해 사라져가는 대표적인 소리가 되었다.


통 길을 통해 산 아래까지 내려온 통나무는 목도꾼들이 줄과 목도채를 이용해 어깨에 매고 운반을 하게 된다. 이때는 무거운 통나무를 쉽게 옮기기 위해 걸음걸이, 동작, 호흡 등을 맞추며 목도소리를 하게 된다. <허영차 소리>라고도하는 목도소리는 기능과 밀착된 소리로 통나무를 두 명이 메고 운반할 때는 걸음걸이가 빠르고 호흡도 가까서 빠른 가락이지만, 목도꾼의 네 명, 여섯 명, 여덟 명으로 수가 늘어날수록 걸음도 느려지고 소리 또한 느려진다.


<허영차 소리>는 앞소리와 뒷소리가 서로 맞물려 이어지는데, 소리와 호흡과 발이 맞으면 듣기에도시원하고 좋은 리듬 구조를 가지고 있다.

목도꾼에 의해 옮겨진 소나무는 강변에 쌓아 두었다가 뗏목으로 만들어져 강 길을 통해 서울로 옮겨졌다. 1960년대에 들어와서 기차나 자동차가 운목을 대신하기 전까지 서울까지 보름 넘게 걸리는 뗏목을 타고 가면서 떼꾼들이 부른 운수노동요 가운데 기능이 고정된 소리는 <어여차 소리>를 들 수 있다. <어여차 소리>는 뗏목이 내려가다가 바위에 걸리면 긴 막대를 집어넣고 뗏목을 떠넘길 때 부르는 소리로 다른 곳에서는 보고되지 않은 것이기에 눈길을 끈다.


밭농사와 벌채(伐埰), 운목 등으로 인해 생겨난 노동요가 해가 갈수록 듣기가 어려워지는데 반해 <아라리>는 아직도 정선 곳곳에서 널리 불러지고 있다. <아라리>는 밭을 매면서 부르기도 했지만, 봄철 여자들이 산에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적막감과 무서움을 덜기 위해 부르기도 했고, 남자들은 땔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 다닐 때 지게 작대기로 지게목발을 두드리며 부르기도 했다. 또한 동면 호촌리 등지에서는 아직까지도 대마를 삶아 껍질을 벗겨 삼을 삼아 베를 잘 때 쓰이는 도구인 베틀을 소재로 한 <베틀가>가 있지만, <베틀가> 보다는 오히려 <아라리>를 훨씬 더 많이 부르고 있다.


이밖에도 <자장가>, <아이 어르는 소리> 등 육아와 관련된 민요도 지역에 관계없이 다양한 분포를 보이고 있는데, <아라리>가 어린아이를 재우거나 달랠 때 쓰이는 양상도 조사되었다.

 

아리랑(ararikim)

'***음악이 있는곳*** > 노동 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동요/작업요  (0) 2008.07.10
구지가  (0) 2008.07.10
노동요 중 진도 보리타작소리 옹헤야 올려봅니다  (0) 2007.09.27
노동요  (0) 2007.09.27
노동요가사  (0) 2007.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