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을 중심으로 M-551의 성능과 실전 1959년 개발된 후 베트남에 파견은 68년경 승인되었다. 물론 기존의 파견부대 제4기갑연대 1,3대대에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얇은 장갑으로 악명이 높았던 이 전차를 현지부대에서 수령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흐지부지 되는듯 했으나 결국 69년1월 11기갑연대 1대대와 4기갑연대 3대대에 전차가 보내졌다.
이들 셰리단으로 대체된 전차는 M-48A3로 개선이라 아니라 개악인셈이다. 오죽하면 일부 단위부대는 M-113장갑차를 주력으로 사용하였으며 지급된 전차들도 이것들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은 명령이라 70년까지 베트남의 대부분의 기갑연대에는 셰리단이 배치되었다.
Sheridan 경전차의 수많은 실전적 결함들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첫째, 전자 사격통제장치의 결함이다. 우기에 열대성스콜이 잦은 베트남에서 셰리단의 사격통제시스템은 끊임없이 오작동과 작동불능을 거듭했다고 한다.
둘째, 주포탄의 가연성이 문제가 되었다. 다른 탄에 비해 셰리단의 152mm탄은 민감한 편이라 유폭의 우려가 컸으며(실제로 종종 유폭으로 승무원이 전원사망하는 재앙을 일으켰다고 한다) 셰리단의 차대역시 덥고 습한 베트남의 환경에 적절치 않아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베트남에 참전한 한 셰리단 전차장은 심지어 자신의 전차기동사진을 찍어 의회에 항의하려고 하기도 했다. 기동시 특히 심한 소음과 특유의 흰 연기는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RPG 공격의 목표가 되었고 안그래도 얇은 장갑의 셰리단에게 치명적일수 있기때문이었다.
셋째, 장갑의 부족이다. 셰리단의 주화기중에 전차장용 M-2HB 0.50 기관총이 있다고 언급한 사실을 기억하실 것이다. 처음 베트남에 파견될 당시 세리단에는 캘리버 50과 전차장을 보호할 금속제 쉴드가 없었다. 어처구니 없는 장비에 결국 대원들은 M-113용 전차장보호 장갑판을 장착하였고, 이후 현지부대의 항의로 장갑판이 개발되어 지급되었다고 한다. 또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은 전차의 바닥이다. 어차피 전차들은 바닥에 그다지 신경을 안쓰는 편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지뢰등에 대한 방호력은 계산해 설계하는 편이다. 그러나 셰리단은 전임 패튼전차만도 못한 방호력으로 인해 많은 승무원들이 이 전차에 탑승을 거부하는 사태를 야기시켰다. 결국 육군은 방호용 철제 장갑키트를 별도로 붙였다.
마지막으로 통신장비와 엔진의 문제다. 이녀석의 통신장비는 주포사격에도 쉽게 대미지를 입고 온도와 습도에도 민감해서 먹통이되기 쉽상이었다고 한다(한 병사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고장이 잘나는 온도범위를 연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주간에는 화씨100도이상 야간엔 70도 이상이라나...)
엔진의 경우는 더 문제가 심각했던걸로 보인다. 알다시피 베트남은 온통 잡풀 투성이다. 이 전차의 설계자는 이를 고려치 않았는지 각종풀이 쉽게 엔진실 환기구로 빨려들어가 엔진이 자주멈추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결점들로 인해 베트남 현지의 기갑부대 병사들은 셰리단을 "죽음의 덫"이라고 부르며 증오했다고 한다. 11기갑연대에서 근무했던 "짐 피츠패트릭"이라는 이는 자신이 근무하는 동안 소속기갑연대의 패튼이 방출되고 대신 M-113이 대체되었음에도(아마 이부대는 셰리단대신 M-113을 선택한것 같다) 자신이 매복공격을 당했을때 셰리단에 타지 않을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셰리단은 지뢰를 밟으면 방호력이 약해 상대적으로 민감한 셰리단의 탄약이 유폭을 일으키기 쉬웠고 이 전차의 트랙의 장갑판은 RPG나 캘리버50탄에도 뚫리기 쉬웠다고 하니 이 경우 구관인 패튼이 명관이었나 보다.
기갑부대의 조합... 미육군은 기갑연대 예하 전차수색대에도 병사들의 원성을 생각해 셰리단의 비중은 줄였다. 대부분을 M113으로 채우고 수색대 내에 3~4대의 셰리단을 배치하였다. 그럼에도 셰리단을 타겠다고 자청하는 병사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셰리단으로 대체하는 대신 M113으로 대부분의 전차를 대신하는 부대가 생겼을까....
아무튼 이 셰리단이라는 전차는 베트남이라는 환경에 적절치 않은 모델임에도 적절치 못한 판단으로 파견되어 악명을 떨치고 수많은 인명손실에 기여했던걸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