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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있는곳***/노동 요

민중들의 굵은 땀방울에 신명나는 추임새를 넣다 _ 노동요

*설향* 2007. 9. 27. 00:35
민중들의 굵은 땀방울에 신명나는 추임새를 넣다 _ 노동요

노동요, 그 살맛나던 공동체 문화의 흔적을 쫓아서


태초부터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는 노래가 아니었던가 싶다. 기쁠 때 함께 기뻐해주고, 슬플 때 함께 슬퍼해주고, 힘들 때 위로가 되어주는 친구, 노래.

 

 


 따라서 인간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직업군을 창출해내며, 그 속에서 노동과 노래를 접목시켜 왔다. 서인도 제도의 트리니다드 섬에서는 가얍(gayap)이라는 전통적인 농경 노동요를 불렀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는 플레나(plena)를 불렀다.

 

 

또, 미국의 흑인 노동자들은 노예시대와 그 뒤 오랜 노동요의 전통에서 수많은 영가와 블루스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노동요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되어 왔다.

 

일터에서 부르는 노동요는 대개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내는 소리, 몸 움직임, 연장 소리가 섞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아마도 반복되는 작업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 또는 일정한 리듬을 계속 유지해 일의 효 율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된다. 

농부의 애환과 농사일의 고됨을 이겨내는 힘,
농사 노동요
우리나라에서 전해지는 노동요는 그 종류만 해도 매우 다양하다. 밭갈이·모내기·김매기·타작할 때 부르던 농업 노동요, 그리고 물레 노래·삼 삼는 노래·베틀 노래 등으로 대표되는 길쌈 노동요, 그 외에도 토목 노동요, 운반 노동요, 어업 노동요, 제분 노동요, 수공업 노동요, 가내 노동요 등이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 사회는 농경 사회였던 만큼 이들 노동요 중 농업 노동요가 주를 이루었다.

 

 

농업 노동요는 농민들이 생산 현장에서 일의 리듬에 맞게 만들어 낸 민중의 노래였다. 모내기철이 한창이면, 우리 선조들의 노랫가락에도 힘이 들어갔다. 삶의 애환과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한 사람이 메기는 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후렴구를 목이 터져라 같이 불렀다. 이러한 감정의 교류를 통해 육체적인 피로를 잊으려 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황해도 지방의 농업 노동요인 <감내기>를 살펴보자. 여름철에 농부들이 밭의 김을 매면서 부르던 이 농요는 처음에는 느리게 부르다가 점점 빨라진다. 농부들 중 소리가 좋은 한 사람이 선소리를 내주면 나머지 사람들이 뒷소리를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가사를 살펴보면

 


“울담장 밖에 꼴 베는 도령아 외 넘어간다, 외 받아먹어라. 받으라는 외는 제 아니 받고 물 같은 손목을 휘감아 쥔다. 해는 지고 저문 날에 나의 갈길 천리 같다.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우리 부모님 날 기다린다. 머슴 살러 머슴 살러 머슴 살러 오려므나. 나 시집 간 데로 머슴 살러 오려므나. 버선 신발은 내 당해 줄께, 나 시집 간 데로 머슴 살러 오려므나” 이다.

 


이처럼 농요 속에는 농사 이야기보다는 해학과 선정성이 가미되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단조롭고 힘겨운 농업 속에서 똑같은 일상을 노래로 부른다면 오히려 일은 더 고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하여 위의 노동요처럼 양반네 도령도 머슴으로 유인해 가면서 나를 가두고 있는 일상을 모두 잊고 노래하다 보면, 힘든 노동의 시간도 쏜살같이 날아가 버리고 만다. 우리가 지금 TV나 영상매체를 통해 느끼는 엔터테인먼트적인 감정들을, 우리 조상들은 일을 하면서 부르던 노래를 통해 서로에게 전달하고 또 공유했던 것이다.

 



부녀자들의 감수성을 어루만졌던,


길쌈 노동요
길쌈 노동요는 또한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를 둘 수 있다. 이 노동요는 부녀자들이 길쌈을 할 때나 다림질을 할 때 주로 불려졌다. 부녀자들은 바깥 세계와는 단절된 생활 여건 속에서 당시 가내수공업의 중심이던 고된 길쌈을 해가며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노래에 담아 왔다.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노래를 대표하는 것으로는 <물레 노래>, <베틀 노래>, <삼삼기 노래(織麻歌)>등이 있다.

 

 

가사의 내용은 작자와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첫머리에서는 꿈같은 동경의 세계인 월궁月宮의 선녀를 노래하고 그 뒤로 인간 세계의 고통과 즐거움을 읊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 지방 <베틀노래>의 서두를 들면, “바람은 솔솔 부는 날, 구름은 둥실 뜨는 날, 월궁에 노던 선녀, 옥황玉皇님께 죄를 짓고….”이며, 경남 남해 지방 <길쌈노래>의 서두는 “강남달 강수자는, 글씨 좋아 소문나고, 강남달 강처사는, 인물 좋아 소문나고….”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노동요를 듣다 보면, 농업 노동요와는 사뭇 다르게 문학적인 느낌이 강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부녀자들은 자신들의 문학성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에 노동 속에서 자신의 문학성을 선보이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감수성을 펼쳐 보였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 규방문학의 발달은 노동요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

 

 

망망대해의 어부들이 불렀던 어업 노동요
대표적인 노동요를 일컫는데 있어 고기를 잡으며 부르는 어업 노동요도 빠질 수 없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뱃노래를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이며, 좁은 의미 로는 <심청가> 중의 한 대목이나 경기잡가 중의 <선유가(船遊歌)>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여러 해안 지방에는

 

많은 뱃노래가 전해져 오는데 대개 서해안에서는 ‘배따라기’, 동해안에서는 ‘뱃노래’로 불린다. 노래의 종류는 작업의 종류에 따라 노 젓는 소리, 닻 감는 소리, 그물 던지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등 때마다 다르며, 같은 뱃노래라 해도 물살이 약한 강에서와 파도가 센 바다에서 부르는 노래가 서로 다르다.

 

 

각 지방별로 알려진 뱃노래는 연평도의 <뱃치기>, 충청남도 서산의 안면도를 중심으로 한 <봉기(鳳旗)타령>, 전라북도 위도의 <띄뱃놀이>, 남해안의 <거문도뱃노래> 등이 있다.

 

이 노래들은 어업이라는 작업이 유동적이어서 서로 교류를 가졌기 때문인지 대개 비슷한 유형이다. 어업 노동요 역시 처음 앞사람이 선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아 준다. 앞소리는 선율이 복잡하며 사설 내용도 다양하나 뒷소리는 단순한 선율에 같은 사설만을 반복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은 어로 방식이 변해서인지 어업 노동요도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노동요들은 근대로 넘어오면서 유행 新민요나 대중가요의 강한 침투를 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의 생각과 미의식을 주체적으로 표출하기도 하였다. 고전 노동요가 자급자족적인 소농 위주의 촌락 공동체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면,

 

新노동요는 신흥 상업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한 전국 단위의 노래가 되었다. 경기 지방의 <긴방아타령> 같은 노래들은 저항과 투쟁의 노래로 발전한 新노동요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노동의 종류와 방식이 달라지고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일하며 부르는 노동요는 사라졌거나 거의 사멸되었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부르는 노래는 일과 무관해지고 있으며,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듣는 것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신경림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지금 우리 삶의 현장에는 건강 적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겠다.

“민요는 일 속에서, 삶의 한가운데서 저절로 나온 노래, 즉 농요나 노동요일 것이다.


따라서 민요를 따라가는 일은 곧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민중적 삶의 현장을 찾는 일일 수밖에 없다.”
- 신경림 ‘민요기행’ 中에서
 

현대 사회를 되돌아 보면 과거에 비해 문명의 혜택이 커지면서 ‘편리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편리함 속에서 더 시간에 쫓겨 사는 걸까? 노동요를 듣다 보면 과거 우리 조상들의 일터가 눈앞에 그려진다.

 

농사일을 하다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노랫가락을 뽑아내다가는 속이 허전하다면서 새참도 한 그릇 먹어 주고…. 그러면서도 농사는 풍년이었을 것이다. 바깥 출입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부녀자들도 스스로의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서로 위로하듯 노래 자락을 끌어내고,

 

 

그러면서도 베를 짜고 삼을 삼았다. 뱃사람들 역시 파도며 바람을 벗 삼아 노래 한 곡조 뽑아 올리고, 그러다 보면 어망이 넘쳐 흥이 고조되고…. 이렇게 우리 옛 조상들은, 우리의 민중들은 노동을 즐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일터에는 노래가 사라지고 그만큼 삭막해지면서, 노동이 즐거움이 아닌 마지못해 하는 괴로움이 되어가고 있다.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민중적인 삶의 현장을 위해 잊혀졌던 우리의 노랫가락을 내가 먼저 선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 자 어디 한 번 해보자!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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