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들의 굵은 땀방울에 신명나는 추임새를 넣다 _ 노동요 |
노동요, 그 살맛나던 공동체 문화의 흔적을 쫓아서
또, 미국의 흑인 노동자들은 노예시대와 그 뒤 오랜 노동요의 전통에서 수많은 영가와 블루스를 발전시켰다. 이렇게 노동요는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탄생되어 왔다.
일터에서 부르는 노동요는 대개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내는 소리, 몸 움직임, 연장 소리가 섞여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아마도 반복되는 작업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서, 또는 일정한 리듬을 계속 유지해 일의 효 율을 높이기 위해서 부르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된다.
농업 노동요는 농민들이 생산 현장에서 일의 리듬에 맞게 만들어 낸 민중의 노래였다. 모내기철이 한창이면, 우리 선조들의 노랫가락에도 힘이 들어갔다. 삶의 애환과 노동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한 사람이 메기는 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후렴구를 목이 터져라 같이 불렀다. 이러한 감정의 교류를 통해 육체적인 피로를 잊으려 했던 것이다.
가사의 내용은 작자와 지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첫머리에서는 꿈같은 동경의 세계인 월궁月宮의 선녀를 노래하고 그 뒤로 인간 세계의 고통과 즐거움을 읊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 지방 <베틀노래>의 서두를 들면, “바람은 솔솔 부는 날, 구름은 둥실 뜨는 날, 월궁에 노던 선녀, 옥황玉皇님께 죄를 짓고….”이며, 경남 남해 지방 <길쌈노래>의 서두는 “강남달 강수자는, 글씨 좋아 소문나고, 강남달 강처사는, 인물 좋아 소문나고….”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노동요를 듣다 보면, 농업 노동요와는 사뭇 다르게 문학적인 느낌이 강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부녀자들은 자신들의 문학성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았기에 노동 속에서 자신의 문학성을 선보이고, 그 속에서 자신들의 감수성을 펼쳐 보였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조선시대 규방문학의 발달은 노동요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된다.
망망대해의 어부들이 불렀던 어업 노동요
많은 뱃노래가 전해져 오는데 대개 서해안에서는 ‘배따라기’, 동해안에서는 ‘뱃노래’로 불린다. 노래의 종류는 작업의 종류에 따라 노 젓는 소리, 닻 감는 소리, 그물 던지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등 때마다 다르며, 같은 뱃노래라 해도 물살이 약한 강에서와 파도가 센 바다에서 부르는 노래가 서로 다르다.
각 지방별로 알려진 뱃노래는 연평도의 <뱃치기>, 충청남도 서산의 안면도를 중심으로 한 <봉기(鳳旗)타령>, 전라북도 위도의 <띄뱃놀이>, 남해안의 <거문도뱃노래> 등이 있다.
이 노래들은 어업이라는 작업이 유동적이어서 서로 교류를 가졌기 때문인지 대개 비슷한 유형이다. 어업 노동요 역시 처음 앞사람이 선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여러 사람이 뒷소리를 받아 준다. 앞소리는 선율이 복잡하며 사설 내용도 다양하나 뒷소리는 단순한 선율에 같은 사설만을 반복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요즘은 어로 방식이 변해서인지 어업 노동요도 사라져가고 있는 듯하다.
新노동요는 신흥 상업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한 전국 단위의 노래가 되었다. 경기 지방의 <긴방아타령> 같은 노래들은 저항과 투쟁의 노래로 발전한 新노동요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준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는 노동의 종류와 방식이 달라지고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일하며 부르는 노동요는 사라졌거나 거의 사멸되었다.
대부분의 일터에서 부르는 노래는 일과 무관해지고 있으며,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듣는 것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신경림 선생의 표현에 의하면 지금 우리 삶의 현장에는 건강 적신호가 켜졌다고 볼 수 있겠다. “민요는 일 속에서, 삶의 한가운데서 저절로 나온 노래, 즉 농요나 노동요일 것이다.
현대 사회를 되돌아 보면 과거에 비해 문명의 혜택이 커지면서 ‘편리함’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편리함 속에서 더 시간에 쫓겨 사는 걸까? 노동요를 듣다 보면 과거 우리 조상들의 일터가 눈앞에 그려진다.
농사일을 하다 하늘 한 번 바라보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노랫가락을 뽑아내다가는 속이 허전하다면서 새참도 한 그릇 먹어 주고…. 그러면서도 농사는 풍년이었을 것이다. 바깥 출입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부녀자들도 스스로의 처지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서로 위로하듯 노래 자락을 끌어내고,
그러면서도 베를 짜고 삼을 삼았다. 뱃사람들 역시 파도며 바람을 벗 삼아 노래 한 곡조 뽑아 올리고, 그러다 보면 어망이 넘쳐 흥이 고조되고…. 이렇게 우리 옛 조상들은, 우리의 민중들은 노동을 즐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일터에는 노래가 사라지고 그만큼 삭막해지면서, 노동이 즐거움이 아닌 마지못해 하는 괴로움이 되어가고 있다. 건강하게 살아 숨 쉬는 민중적인 삶의 현장을 위해 잊혀졌던 우리의 노랫가락을 내가 먼저 선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자, 자 어디 한 번 해보자! 얼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