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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들의 열띤 응원

*설향* 2008. 8. 24. 05:49


한국 응원단들이 23일 저녁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에서 열린 올림픽야구 결승전 쿠바와의 경기에서 태극기를 들어보이며 열띤 응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2008년 8월 23일 중국 현지시각 밤 9시 20분.
3-2 한 점차의 불안한 리드를 지켜나가고 있던 한국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쿠바의 선두타자 올리베라의 안타. 1점 승부를 원하는 팀에게 있어 무사 1루는 보내기번트로 이어진다. 1사 2루에서 안타 하나로 동점을 만들기 위한 것.

동점이라는 불길함을 떨쳐내기 위해 소리높여 응원전을 펼쳤지만 일순간 한국 응원단을 침묵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8회까지 무사사구 행진을 펼치던 류현진의 공이 순식간에 연속 볼넷을 만든 것.

포수 강민호가 이에 항의하는 모습을 보이자 주심은 즉시 강민호를 퇴장시켰다. 스트라이크와 볼을 결정하고 선수를 퇴장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은 심판이지만 당시 판정과 퇴장 명령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당한 퇴장이라고 생각한 김경문 감독이 즉시 그라운드로 달려나왔다. 김경문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엄지를 아래로 향하며 욕설을 내뱉는 사람까지 있었다. 1사 만루에서 선발 포수의 퇴장. 누가 보더라도 동점이나 역전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진갑용을 포수로 올리면서 마무리투수로 정대현을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급작스런 상황에 당황하지 않도록 배터리를 정비한 것.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세이브를 올렸던 정대현이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경기는 말 그대로 마무리되었다. 1사 만루에서 쿠바의 강타자를 병살타로 막아내며 극적인 승리를 연출하는 순간 한국 응원단은 열광했다. 그 순간 쿠바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굳어지고 말았다.



23일 야구 결승전이 열린 우커송야구장은 한국 응원단이 압도적인 응원을 펼쳤다. 사진은 쿠바를 응원한 관중들. 이들은 쿠바가 패하자 마치 자국 팀이 진 것처럼 굳은 표정을 보였다.

ⓒ 박상익
한국 응원은 한국사람만, 쿠바 응원은 다국적
경기 시작 전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의 관중석은 모두 한국 사람들이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추첨을 통해 배정된 1루는 한국대표팀, 3루는 쿠바대표팀이 자리했다. 하지만 덕아웃 배정과 상관없이 한국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관중석 곳곳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날 경기장을 찾은 야구팬들은 한국과 쿠바 사람만이 아니었다. 단지 소리를 지르지 않고 막대풍선을 때리지 않은 것 뿐이었다.

경기가 점점 달아오르자 관중석에서 미국, 캐나다, 중국 국기가 눈에 띄었다. 심지어 일장기까지 보였다. 미국팬은 결승전이 끝난 뒤 시상식을 보기 위해 관전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중국팬들은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야구에 대한 인기가 별로 없어도 호기심으로 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손에 일장기를 들고 나타난 일본 관중들의 모습은 의외였다. 일본은 미국과의 3-4위전에서도 패배해 시상식을 볼 이유도 없었다. 일본의 결승 진출을 예상하고 구매했던 티켓이 아까워서인지 자국을 이기고 결승에 올라간 한국이 얄미워 지는 꼴을 보고 싶다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이날 경기의 응원은 한국을 응원하는 한국사람과 쿠바를 응원하는 여러 나라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한국에게 야유를 보내거나 한국 상대팀에게 응원을 보내는 사람들은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3루 관중석에 있던 중국, 미국, 일본, 쿠바 연합 응원단은 "쿠바 찌아요!"를 연호하며 쿠바팀을 응원했다. 개인이 어느 팀을 응원하든 그것은 개인의 자유. 하지만 한국에게 적대감을 드러낼 정도의 감정표현은 그저 응원이라고 보기엔 뭔가 석연찮았다.

어쩌다가 한국팀의 인기가 이렇게 떨어진 것일까? 야구를 좋아한다는 베이징 시민 완케지아(33)는 중국 사람들이 쿠바를 응원하는 것은 "지고 있는 팀이기 때문에 격려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사람은 일본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에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친 그녀는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어제(22일) 준결승전의 일본 응원도 그러한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지금 한국팀이 지고 있다면 이 사람들이 한국을 응원할 것으로 생각하는가'라고 물었을 때는 "물론이다"라고 답하면서도 말끝을 흐렸다.



올림픽 야구 결승전이 펼쳐진 한국-쿠바전에 나타난 일장기. 그는 어떤 심정으로 결승전을 보러 왔을까?

ⓒ 박상익
질투라고 보기엔 찜찜했던 관중석 분위기
일본팬들 또한 쿠바대표팀이 안타를 치거나 호수비를 할 때 누구보다 열광했다.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라고 여겼던 한국에게 두 번이나 역전패를 당했기에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겠지만 9회말 민감한 상황에서 한국 선수들을 향해 엄지 손가락을 밑으로 내리고 욕설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는 응원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오히려 쿠바 응원단이 경기가 끝난 후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흥겨운 리듬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자국 선수단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 함께 박수를 쳤다.

한국 대표팀이 매번 극적인 승부를 펼치며 결국 전승으로 예선을 통과한 후 금메달이라는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 우커송야구장의 분위기는 한국에게 크게 적대적이진 않았지만 결코 우호적이지도 않았다.

단순히 잘하는 팀에 대한 심술이라고 보기엔 뭔가 찜찜했던 분위기. 경기가 끝나갈 무렵 완케지아는 "한국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좋은 것 같냐"고 물었다. 그 한 마디 질문 속에 이날의 분위기를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