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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아기의 소화 데레사

*설향* 2012. 1. 15. 18:33

예수 아기의 소화 데레사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 동정(1873-1897) 축일 : 10월 1일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리지외의 봉쇄 수녀원에서 숨어 살던 갈멜 수녀인 예수 아기의 데레사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숨은 희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영혼을 회개시켰던 것이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인들 가운데서 이 젊은 수녀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얼마 안된다.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한영혼의 이야기'는 전세계에서 읽혀지며 사랑을 받고 있다. 데레사 마르탱은 15세에 수녀원에 들어가 24세가 되던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갈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평온무사한 것이었고 주로 모든 집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시간을 구속한다는 거룩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따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은밀한 고통 안에서 구원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 고통은 참으로 그녀의 사도직이되었다. 데레사는 "영혼을 구하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갈멜 수녀원에 들어왔다." 고 말했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 "나는 지상에서 선행을 하면서 나의 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썼다.

[설명] 데레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소금'이라는 말과 그 이미지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리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되었고 성취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데레사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자신의밖에 있는 어떤 것을 하려했으며 조용한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을 잊으려고 애썼다.
데레사는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그 생명을 얻고, 땅에 떨어진 씨앗이 살기 위해서는 썩어야 한다는 복음적인 역설을 실지로 살아간 위대한 본보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현대인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동료들과 떼어놓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든다. 현대인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배워야 하며, 자신의 밖으로 자신을 끌어 낸 하느님을 관상하며 자신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다른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리지외의 성녀데레사가 지닌 직관이며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가치 있는것이다.

 [인용] 성녀 데레사는 일생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렸을때 데레사는 석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어 있었는데 그 어려운 고비를 겪고 의식을 잃어 정신이 계속 희미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허약했으나. 그래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했다. 데레사는 심리적으로 신앙의 빛이 모두 꺼진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었다.

데레사는 그녀의 생명이 다해 가던 마지막 해에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되었다. 그래도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그녀는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렸다. 데레사는 참으로 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운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을 아는 한 위인의 위대한 점이다. 허약함과 병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른사람에 대한 봉사와 구원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연금술이기도 하다. 데레사가 선교의 수호자가 된 것에 대하여 이상한 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을 사랑안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외에 누가 참으로 세상을 회개시키는가?

< 소화데레사의 가족과 일생 >

1. 부모님(1858년 결혼 ; 17년간 9명의 자녀 출산)
- Louis Martin(1823-1894) : 시계-보석상(1850-1870).
- Z lie Gu rin(1831-1877) : 레이스 제조 직공.

2. 수녀가 된 자매들
1) Lisieux의 가르멜회에 5명의 수녀
- Marie (1860-1940) : 성심의 마리아 수녀 ; 1886.10.15. 입회.
- Pauline(1861-1951) : 예수의 아녜스 수녀 ; 1882.10. 2. 입회.
- C line (1869-1859) : 성면(聖面)의 즈느비에브 수녀 ; ; 1894.9.14. 입회.
- Th r se(1873-1897) : 아기 예수와 성면(聖面)의 데레즈 수녀 ; 1888.4.9.입회.

2) 깡(Caen)의 성모방문회에 1명의 수녀
- L onie (1863-1941) : 프랑수와즈 데레즈 수녀 ; 소화 데레사 수녀 서거 2년 후 입회.

3. 어린 나이에 죽은 언니/ 오빠들
- H l ne (1864-1870.2.)
- Joseph-Louis (1866-1867.2.)
- Joseph-Jean Baptiste(1867-1868.8.)
- M lanie-Th r se (1870.8.16.-10.18.)

4. 외가
- Marie-Louise Gu rin(일명 Elise : 1829-1877) : 도지떼(Dosith e)의 마리아 수녀 ;
깡(Caen)의 성모방문회에 1858.2. 입회.
- Isidore Gu rin(1841-1909) : Lisieux에서 약사.
- Elisa-C line Fournet(1847-1900)
- Jeanne Gu rin(1868-1938) : 결혼함.
- Marie Gu rin(1870-1905) : 성체의 마리아 수녀 ; 1894.6.16. 입회.
- Paul Gu rin(1871) : 태어나자마자 사망.


<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생애 >

1. 알랑송(Alen on : 1873 - 1877)
- 1873년 1월 2일 : Marie-Fran oise-Th r se-Martin의 탄생.
- 1873년 1월 4일 : Alen on의 성모 성당에서 세례.
- 1873년 3월 - 1874년 4월 6일 : Semall 에 있는 로즈 따이예(Rose Taill )에게서 양육.
- 1877년 8월 28일 : 엄마 젤리 마르땡(Z lie Martin)의 죽음.
- 두번째 엄마로 Pauline을 선택.

2. 뷔쏘네(Buissonnets)에서 리지으(Lisieux)까지(1877 -1888)
- 1881년 10월 3일 : 리지으에 있는 분도 수녀원 소속 여학교에서 반기숙생.
-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펐던 다섯 해"(1881-1885)
- Pauline은 리지으의 대성당의 예수님상 앞에서 자신의 성소를 발견한다.
- 1882년 10월 2일 : 가르멜 수녀원에 Pauline의 입회/ 두번째 엄마와의 이별.
- 1883년 3월 13일 : 데레사, 중병 얻음.
- 5월 13일 : 성모 마리아의 미소에 의해 완치.
- 1884년 5월 8일 : 첫 영성체.
- 6월 14일 : 위고냉(Hugonin) 주교에 의한 견진(그것은 사랑의 입맞춤이었다).
- 1885년 5월 : 세심증의 시초.
- 1886년 2월 : 학교 중퇴한 환자 데레사의 특별한 수업(빠삐노 아줌마댁).
- 10월 15일 : 큰 언니 Marie의 입회/ 세번째 엄마와의 이별.
- 12월 25일 : 데레사의 회심. "이 빛의 밤에 내 인생의 세번째 시기가 시작되었다."(자서전 A)
- H.Pranzini의 회개를 위한 기도와 성취 : 가르멜 성소에 확신을 얻음.
- 1887년 10월 31일 : 위고냉 주교와의 만남.
- 11월 4일-12월 2일 : 이태리로의 여행/ 교황 레오 13세께 입회허가 요청.

3. 리지으(Lisieux)의 가르멜(Carmel)(1888-1897)
-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 "가르멜은, 선하신 하느님께서 내가 나를 감추기를 원하셨던 사막이었다."
- "나는 영혼을 구하려고, 특히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가르멜에 왔습니다." (Ms A)
- 1889년 1월 10일 : 데레사의 착복식.
- 12월 12일 : 아버지의 정신병원 안치.
- 1890년 9월 8일 : 허원.
- 9월 24일 : 공적 착복예식.
- 1891년 10월 : 프란치스코회 프루 신부가 진행하는 피정 ; 십자가의 성 요한의 저서 탐독하는 시기.
- 1892년 5월 10일 : 아버지, 집으로 돌아옴.
- 1893년 2월 20일 : 예수의 아녜스 수녀(뽈린 마르땡)가 수녀원장으로 선출됨.
- 1894년 1월 2일 : 21세의 데레사.
- 6월 29일 : 아버지의 서거.
- 9월 14일 : 셀린의 입회.
- 겨울에 : 순명에 의해, 데레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편집하기 시작 ; '작은 길'의 발견.
- 1895년 : 자서전 A의 편집의 해.
- 1월 21일 : 데레사, 쟌다르크에 관한 두번째 작품을 주연하다.
- 5월 30일 : 룰랑(Roulland) 신부, 그녀의 두번째 영적 오빠로 맡겨짐.
- 6월 9일 : (삼위일체 대축일에) 자비로우신 사랑에 봉헌.
- 10월 17일 : 모리스 벨리에르(Maurice Belli re) 신학생, 데레사에게 맡겨짐.
- 1896년 3월 21일 : 수녀원장으로 마리 드 공자그(Marie de Gonzague) 수녀 선출 ;
그녀는 5명의 수련자를 데레사에게 맡김.
- 성 목요일, 성 금요일 : 두 번의 각혈.
- 부활절 : 신앙 및 희망의 밤에 들어감.
- "내 어머니인 교회의 중심 안에서 난 사랑일 거예요. 그래서 난 모든 것일 거예요."
- 9월 : 성심의 마리아 수녀를 위한 자서전 B의 편집.
- 1897년 4월 : 데레사, 심각하게 아픔 ; '마지막 권고들'의 시기.
- "나는 죽지 않습니다. 나는 생명 안으로 들어갑니다."
- "나는 이 세상에서 매우 고통당했습니다 ; 영혼들에게 그것을 알게 해야 합니다."
- "나는 땅위에서 선을 행하면서 나의 하늘을 지나갈 것입니다."(마지막 권고, 7월17일)
- "나는 나의 파견이 시작되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선하신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그분을 사랑하게 하는 것, 또한 영혼들에게 나의 작은 길을 주는 것이 바로 나의 파견입니다."(마지막 권고, 7월 17일)
-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요한 19,30)
- 1897년 9월 30일 : 데레사 서거.


< 아기 예수의 데레사 수녀 서거 이후 >

- 1898년 9월 30일 : '한 영혼의 이야기'의 출간(2,000부).
- 1899 - 1900년 : 데레사의 무덤 위로 첫번째 순례자들 ; 첫번째 기적들.
- 1910년 : 관례의 소송 개최.
- 1915년 : 사도적 소송 개최.
- 1921년 : 베네딕도 15세, 하느님의 가경할 한만 여종의 덕들의 영웅성에 관한 시행령을 선포하다.
- 1923년 : 가르멜에 유물들의 이송.
- 4월 29일 : 비오 11세에 의한 시복.
- 1925년 5월 17일 : 비오 11세에 의해 로마에서 시성(500,000명의 순례자들).
- 1927년 12월 14일 : 비오 11세, 데레사를 프란치스코 사베리오와 함께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다.
- 1929년 9월 30일 : 리지으의 바실리끄(Basilique)의 첫 돌을 놓음.
- 1937년 7월 11일 : Basilique의 개관식.
- 1944년 5월 3일 : 비오 12세, 데레사를 쟌다르크와 함께 프랑스의 부차적 수호성인으로 선언.
- 1947년 9월 30일 : 데레사 서거 50주년.

그녀의 유물들은 프랑스의 거의 모든 교구들 안에 이송된다.
- 1973년 1월 2일 : 탄생 100주년 기념식.
- 1980년 6월 2일 : 요한 바오로 2세의 리지으 순례.
"나는 교회의 아이입니다. 교회는 여왕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당신의 배우자 이기 때문입니다. 오 왕들의 신적 왕이시여..."
- 데레사는 복음의 가장 근본적인 사실을 우리에게 환기시킨다 :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입니다."
- "나는 영혼들을 비출 것입니다. 나는 사도가 될 사명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 1997년 9월 30일 : 데레사 서거 100주년.
- 1997년 10월 19일 : 데레사, 요한 바오로 2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