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병 시인
/이생진
1
북한산 올라와
건너편 수락산을 보면
천상병 시인 생각난다
어느 해 늦은 겨울 밤
혜화동 로터리 지하다방에서
<분수>동인들이
시낭송을 하고 있을 때
젊은 시인 김낙영의
등에 업혀 왔었지
의자에 내려놓자마자
"야, 생진아,
난 니가 스물 다섯 살인줄 알았데,
히히히"
늘 늙어보이는 시인 천상병
그때 나는 쉰 다섯이고
그는 쉰 넷이었는데
그는 나보다
서너 살 더 먹어보였지
자고 일어나면
하늘로 돌아가겠다던 시인
지금은 하늘로 돌아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내가 주는 용돈 이천 원
천 원은 술마시고
천 원은 저축해서
아내랑 먼 여행
떠나고 싶다던 시인
하루에 몇 번씩
펴 보던 저금통장도
놓고 갔겠지
'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던 시인
지금은 누가 술을 사 주는지
지금은 누가 용돈을 주는지
지금은 누구하고 히히 웃는지
2
당신이 타계하던 날
문우 친지들이 내놓고 간
조의금 팔백 오십만 원
처음 만져 보는 거금을
어찌할 수 없어
당신의 장모가 큰 봉투에 넣어
아궁에 숨긴 것을
당신의 아내 목 여사가
그것을 모르고
연탄불을 지폈지
나는 5월 14일 아침 일곱시 이십분경
출근길 라디오에서
이 소리를 듣고 아차했지
'저승에 가는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
** 하던 당신의 말과
백 원 이백 원 모으던
당신이 생각나서
아차했지,
그러나 지금 당신은
타버린 돈을 보고 히히 웃겠지
저승에 와보니 돈이 필요없더라고
히히 웃겠지(1993)
*천상병의 시<귀천>에서
**천상병의 시<소릉조>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