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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명기***/[*세상에 이런일이*]

가장 작고 가장 값진것

*설향* 2008. 6. 21. 18:48




지난해 외신을 통해
옛 제정러시아 황실의 부활절 달걀이
경매에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세계적인 골동품 경매회사인 소더비가
미국 뉴욕에서 부활절 달걀 9점을
경매에 부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 달걀의 주인은 경제 격주간지인 포브스를 내는
포브스 일가였습니다.





이 달걀들은 6∼7cm 길이로
실제 달걀보다 조금 큰 공예품들입니다.
그러나 값은 최고의 보석 못지 않죠.





경매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대관식 달걀’은
1800만∼2400만달러(약 216억∼288억원)로 알려졌습니다.
러시아 보물 중에서도
‘가장 작지만 가장 귀한 컬렉션’으로 꼽힙니다.





러시아 황실의 달걀 공예품은
부활절에 예쁘게 색칠한 달걀을
선물로 주고받는 전통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당대 최고의 보석세공과
금속공예의 명장(名匠)인 카를 파베르제입니다.





경매에 나오는 달걀은 모두
그의 공방(工房)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그는 1885년부터 30여년 동안
매년 부활절이면 달걀을 만들어 차르(황제)에게 바쳤습니다.
그의 작품 50점 중 현재 소재가 알려진 것은 42점입니다.





1897년에 만들어진 ‘대관식 달걀’을 보면
이 달걀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황금색으로 에나멜 칠을 한 모조 달걀에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고
달걀을 열면 정교하게 만든 황금 마차가 들어 있죠.





파베르제는 15개월 동안 하루 16시간씩 작업해
이 달걀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의 달걀은 달걀 자체의 화려한 장식뿐만 아니라
작은 달걀 속에서 나오는
액세서리의 정교함에 놀라게 합니다.





그가 만든 최초의 달걀인 ‘암탉 달걀’(1855년)은
흰색 에나멜을 바른 모조 달걀 안을
황금으로 장식해 노른자처럼 만들고
병아리를 넣은 것입니다.
병아리 안에는 왕관이,
왕관 안에는 또 붉은색 달걀이 들어 있죠.





그의 다른 작품을 보면 기차나 마차 가마
심지어는 궁전이 달걀 안에서 나옵니다.
나중에는 기계장치로 움직임과 소리까지 냈습니다.





‘수탉 달걀’(1903년)은 매시 정각에 달걀이 열리고
수탉이 튀어나와 몸을 흔들며
소리를 내어 울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는 부활절 아침까지 차르(황제)에게도
달걀 내용을 비밀로 했다고 합니다.
차르는 달걀을 받아서 황후나 모후에게 선물했습니다.





러시아 황실은 파베르제 공방에
‘차르의 인증서’를 내리는 것으로 보답했습니다.
파베르제의 공방은 러시아 외에도
유럽 각국의 왕가와 귀족 가문에 공예품을 공급했고
한때 700명 이상의 예술가와 기술자가 일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공방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부활절 달걀은 조그만 크기에 담긴
극도의 사치스러움으로
러시아 제국의 영화(榮華)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제정러시아가 무너지자
파베르제 일가는 유럽으로 망명합니다.





파베르제가 스위스에서 죽은 후
달걀의 명맥은 끊어집니다.
50개의 달걀 중 현재 러시아 안에 있는 것은
크렘린에 있는 10개가 전부입니다.
영국왕실 컬렉션과 각국의 박물관뿐 아니라
포브스 가문처럼 개인이 소장한 경우도 많습니다.





파베르제 달걀은 시장에 나올 때마다
폭발적인 관심을 모으죠.





물론 파베르제 달걀만이
러시아의 부활절 달걀은 아닙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골동품 가게에서는
200∼500달러면 멋진 달걀 공예품을 살 수 있고,
벼룩시장에는 50달러도 하지 않는
나무로 만든 달걀도 있습니다.






수백억원에 이르는 파베르제 달걀이
새 주인을 만나게 될 이번 부활절에도
많은 러시아인들은 그리스도교 성인(聖人)들이 그려진
소박한 달걀을 선물로 주고받을 것입니다.


(김기현 -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