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숭례문'에 눈시울 붉힌 외국인의 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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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오후 잿더미가 된 숭례문 앞에 한 외국인이 섰다.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Peter Bartholomew·62)씨였다. 그의 파란 눈은 한참 동안 시커먼 잔해만 남고 무너진 지붕과 누각을 훑어 내렸다. 이윽고 눈가가 붉어지더니, 금색 속눈썹이 젖어 들었다.
"숭례문은 외국에서 친구들이 오면 일부러 데려가 자랑하던 곳이었어요. '봐라, 서울에는 시내 한가운데 이렇게 예쁜 건축물이 있다' 하고. 그런데 이제는 완전히 불타버렸으니…."
바돌로뮤씨는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아예 눌러앉았다. 한국 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기 때문이었다.
"중국 전통 건축물은 '나는 이렇게 부자고 힘이 세다. 너는 뭐냐' 하는 오만한 느낌이고 일본 전통 건축물은 너무 깔끔해서 정이 없어요. 한국은 달랐어요. 건물 전체의 부드러운 흐름이 '어서 내게 오세요'라며 따뜻하게 맞아주는 느낌이었죠."
바돌로뮤씨는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민간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명예이사이자, 영국 왕립아시아학회 한국지부의 회장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첫 5년을 강릉에 있는 99칸짜리 사대부의 고택인 선교장에서 살았다. 그 집이 마음에 들어 수없이 찾아가서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는 "내 정성을 기특하게 여긴 할머니께서 '네가 청소할 수 있는 만큼 방을 차지하고 살아라'고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1974년 서울에 온 그는 한옥의 정취를 잊을 수 없어, 동소문동에 한옥을 한 채 사서 35년째 살고 있다. 그는 한국인 뺨칠 정도로 우리 말이 유창할 뿐더러, 한국 전통사상과 건축, 풍수에 대한 지식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숭례문 화재는 그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는 "11일 아침 집에서 용산구에 있는 회사로 출근하다가 새까맣게 탄 숭례문을 보고 너무 놀라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고 말했다. 그는 숭례문의 소실로 서울이 '행운의 상징'을 잃었다며 슬퍼했다. 일제시대 때 고궁부터 지방 관아까지 조선시대 건물 대부분이 철거됐는데, 서울 복판에 있는 숭례문이 헐리지 않고 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그런 걸 잘 몰라요. 당연히 그 자리에 있겠거니 하는 거죠. 하지만 저는 숭례문을 볼 때마다 저도 그 기적 같은 행운을 입는 느낌이 들어 정말 행복했어요."
그러나 바돌로뮤씨는 숭례문의 피해 자체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했다. 한국에 사는 40년 동안 문화재들이 홀대 받는 모습을 숱하게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해마다 아름다운 한옥들이 헐려 사라지는 걸 봤습니다. 한국인 조상들이 '이놈들아!' 하고 호통을 치실 겁니다."
그는 숭례문이 '개발 보상금'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방화로 사라진 데도 뜻이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한국의 혼 같은 한옥을 뜯어내고 아파트를 지은 뒤 '돈 벌었다'며 좋아하는 일이 많았죠. 관광안내 책자마다 숭례문 사진을 실어놓고 정작 방재 예산 편성에는 인색했어요. 그러니 숭례문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600년이나 곁을 지켜줬는데 너무 돌봐주지 않으니까 화가 나서 훌쩍 떠나버린 거지요."
바돌로뮤씨는 앞으로 2~3년 안에 숭례문을 완전 복원하겠다는 문화재청의 발표도 못마땅하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최고의 목재를 골라서 말리는 데만 3~4년이 걸렸거든요. 명장(名匠)들이 고심을 거듭해 나무의 물결 무늬까지 신경을 써서 건물을 지었는데 한국인들이 그런 정성 어린 마음을 잊어버린 것 같아요. 크면 둥글게 다듬고 작으면 섬세하게 깎아서 균형을 맞추던 옛 한국인들의 핏줄은 다 어디로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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