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펌) Caspar David Fried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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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풍경화의 선구자 Caspar David Friedrich
프리드리히는 1774년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어요
Caspar David Friedrich (1774 - 1840)
Sleeping Boy, 1802
1807년 그는 보헤미아 북부지방을 여행하고
[테첸의 제단화]를 자신의 집안에 전시합니다
The Cross on the Mountain, Kunstmuseum at Dusseldorf
The Cross in the Mountains, 1808
Abbey in an Oak Forest, 1809-10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는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 묘지]에 대해
"모든 새로운 풍경화 가운데 가장 의미 심장한 시적인 예술 작품"
이라고 평가했다고 해요
Landscape with Oak Trees & a Hunter, 1811
그러나 이 작품이 처음부터 사랑 받았던 것은 아니었죠
야경꾼의 색조라느니... 비아냥거림을 받기 일 수였죠
괴테도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나중에는 자신의 일기 속에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고 해요
베를린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공개되었던
[바닷가에 서 있는 수도사]와 [떡갈나무 숲의 대수도원 묘지]는
1812년 [거대한 산에서의 아침]과 함께 프로이센 왕실의 소유가 되었어요
[눈 속의 거석묘], [자유를 위해 싸운 전사자들의 무덤],
[숲에 난 길] 등의 작품을 동해 프리드리히는 정치적인 입장을 취했죠
Port by Moonlight, 1811
Woman on the Beach of Rugen, 1818
그는 카를 구스타프 카루스를 알게 되고
1818년에는 가장 유명한 그림들 가운데
[안개 낀 바다를 건너는 방랑자]와 [뤼센 섬의 백악암]이 제작됩니다
Chalk Cliffs on Rugen, 1818-19
그 후 [달을 바라보는 두 남자], [눈 덮인 수도원 묘지],
[바닷가의 월출], [고독한 나무] 등의 작품들이 이어졌어요
Moon Rising over the Sea, 1821
The Tree of Crows, 1822
1823년 노르웨이의 화가 크리스티안 클라우젠 달과 동거하며
공동으로 전시회를 진행하게 되는데요
이 때 프리드리히의 걸작 [빙해]가 나타납니다
The Wreck of Hope
프리드리히의 [빙해]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지만,
관찰자는 다가설 수 없는 곳이다
황토색 또는 회녹색의 빙상 조각들이 서로 포개어져 쌓여 있어,
마치 빗장처럼 관찰자의 접근을 막는다
중간 부분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그 뒤에는 빙산 하나가 기이하게 솟아 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만 같은 우윳빛의 하늘은 조금 구멍이 나 있다
넓은 평지 여기저기에는 또 다른 빙산들이 자리하여 배경을 이룬다
전경에서 왼쪽으로부터, 중경에서는 오른쪽으로부터 작용하는 거대한 힘은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누런 빙판 조각들 주변을 우회하여
얼음덩이와 빙산을 위로 솟구치게 하거나 아래로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프리드리히는 여기에서 중심 그림 축을 둘러싸고 회전 운동을 형상화 시켰죠
난파된 배를 빙산쪽으로 밀어 놓았고
부러진 돛대와 돛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는 극지방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다고 해요
프리드리히의 [빙해]는 근본적으로 다가갈 수 없으며
결국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신'의 크기를 말한다고 해요
그는 그림 속에 "숭고함"을 녹아내고 싶었던 거죠
1826년 베를린에서 열린 그의 전시회에서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북극 지방에는 전혀 다르게 생겼던 걸"
1825년 뵈팅어는 『예수가 비망록』에서
프리드리히의 '극지방 그림' 두 점을 언급했다고 하는데요
그 중 하나가 바로 [빙해]였죠
그 후 그 그림은 1843년 동료 화가 크리스티안 클라우젠 달이 소유하게 되었고
1905년 달의 며느리의 손으로 넘어 오게 됩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그림을 함부르크의 쿤스트 할레에 넘겨버렸다고 전해집니다
1825년 프리드리히는 병에 걸리게 되고
체념하고 고통스러워 하던 순간들이 그림에 나타나게 됩니다
색채도 절제되고, 얼마 뒤 [눈 덮인 오두막 집]이 탄생하게 됩니다
빈 회의 이후의 왕정복고 시기는 비더마이어 양식의 전원적 풍경
개인적 삶으로의 퇴각, 평범함을 특징으로 한다고 해요
그러니 유토피아나 목표, 이상의 것은 그 시대에 존재할 수 없었죠
프리드리히의 [빙해] 과연 사랑을 받았을까요?
팔리지도 않고 관심조차 받지 못했어요
이런 그에게 큰 변화가 옵니다
A Walk at Dusk
이상화된 요구와 비더마이어적인 것으로의 복귀,
미술 시장의 경쟁, 아카데미와 비평가의 권력 등을
부정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프리드리히는 자신이 고림되었다고 느끼며
[드레스덴의 대 사냥터], [인생의 단계]를 그립니다
Riesengebirge, 1835
Landscape in the Riesengebirge
1835년 뇌졸증을 일으킨 그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스케치만을 주로 하는데요
A Mountain Peak with Drifting Clouds c. 1835
부활의 기대 속에서 명상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다가
1840년 드레스덴에서 눈을 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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