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줄은 암 ․ 수 두 줄로 각기 길이가 3백여 미터나 되고 몸퉁도 한 아름은 실이 넘으며
몸퉁에는 비늘(기줄다리기에서는 게발)을 달았고
암 ․ 수 머리를 서로 연결하여 당기는 놀이인데
동네에는 흉년이 하여 사생결단을 하고 줄을 당기었다 하며,
이러한 민속놀이는 농사에 생활의 근거를 둔 농경문화의 특색으로 용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줄다리기를 통하여 영농에 필요한 인내심을 기르는 한편,
상 ․ 하 동네간의 선의의 경쟁을 불러 일으킴으로서 풍년을 기약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제침략하의 민족혼 말살정책에 의하여 50여년간 사라졌다가
, 82년도 제2회 태풍문화제에서 반 백년만에 재현되어
3~4년간 진행되어오다 끊긴 후 다시 재현하게 되었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군내 전체를 읍 상하리를 중심으로상 ․ 하 동네로 나누어 칡이나 볏짚을 모아 새끼를 꼬아 가는 새끼로 동아줄을 몇 차례씩 엮어서
굵은 줄을 만든 다음 시가지에 길게 늘려놓고
(한쪽은 지금의 大東女中, 다른 한쪽은 朴氏고개)
처음에는 1백 여명의 장정이 모여 시작하게 되면
차츰 차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수백 수 천명이 편을 나누어 당기게 되고
아낙들은 막걸리 대접이나 응원으로 하루해를 보낸다.
밤이 되어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이 놀이는 다시 치열한 석전(石戰)으로 전개 되는데
이 줄다리기에서 이긴 동네에는 그해에 풍년이 들고 진 동네에는 흉년이 들고
재앙이 온다하여 사생결단을 하고 줄을 당기었다 하며,
이러한 민속놀이는 농사에 생활의 근거를 둔 농경문화의 특색으로
용에게 풍년을 기원하고 줄다리기를 통하여 영농에 필요한 인내심을 기르는 한편
, 상 ․ 하 동네간의 선의의 경쟁을 불러 일으킴으로서 풍년을 기약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제침략하의 민족혼 말살정책에 의하여 50여년간 사라졌다가
, 82년도 제2회 태풍문화제에서 반 백년만에 재현되어 3~4년간 진행되어오다 끊긴 후 다시 재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