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가을사랑/ 안성란
소리 없이 지나가는 시간의 뒤안길
혼자라는 외로움이 숨을 죽인다.
잡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놓으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채 칵 이는 시계는 어둠을 제치고
가을을 닮은 인생은 시간 속에서
까치발을 들고 사뿐사뿐 춤을 춘다.
지나간 날을 돌아다 본 삶에서
똬리 틀고 앉아 있는 소중한 시간은
내 삶의 가을을 예감한 듯
코끝에 스치는 바람도 이미 가을을 알리고 있다.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나뭇잎은
아직도 초록빛을 잃지 않았건만
여린 마음은 앞서 가는 가을이 되어 버렸다.
가을을 알리는 신음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밤바람 서늘함으로
어두운 창가를 지키는 달빛으로
그렇게 또 그렇게 중년의 가을은 온다.
가을 입니다.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실이 익을 대로 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에
깃들일 것입니다.
..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밤중에 눈을 뜨고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러이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왔다갔다
걸어 다닐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슬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
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
하지만 그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낙하(落下)를 무한히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 R.M.릴케/가을 -
♬배경음악:UtadaHik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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