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마무리
♣
글 : 정파
'장례식을 하지마라
수위를 짜지마라
평소 입던 무명옷을 입혀라
관도 짜지마라
대나무 평상 위에 내 몸을
놓고 다비하라
사리도 찾지마라.
남은 재는 오두막 뜰의 꽃밭에 부려라'
끝내 죽으서도 '무소유'의 의미를
지키며 큰 스님은 가셨습니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내것이라고 하는것은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써 달라.'라고 하시며
3월 11일 오후 1시 51분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조용히 입적을 하셨습니다.
'무소유''산방한담''버리고 떠나기'등
수많은 저서와 법문으로 수많은 대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온 그분은 평생
인세로 받은 수십억원의 돈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세상에
알려졌던것입니다.
스님은 '마치 샘물이 차 오를때 마다 퍼내듯
기부를 하셨으나 정작 본인이 아프셔서
병원에 입원했하셨을 때 장장 돈이 없어서
길상사에서 빌린 뒤에 갚으실 정도였다고 합니다.
6.25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해
대학생이던 스물살 당시였는데
인간과 존재라는 물음과 직면하고
싸락눈이 내리는 어느 날
선승인 효봉스님을
찾아가 출가를 했다고 합니다.
그 길로 출가자의 삶,
수행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부도만 남아 남아 있던 전남 송광사
불임암 터에 토굴을 짓고
홀로 살면서 독서와 수행에 매진 했습니다.
그기서 쓴 에세이 집 '무소유'(76년)는
밀리언셀러가 되었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불필요한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를
살피는것아라고 했습니다.
이생의 은신했던 육신은
구름처럼 사라지고
근엄하고 절제된
맑은 물 같은 가르침은
흠모하는 사람삶들의 가슴에
흐르는 물처럼 유유히 흘러갈것입니다.
무소유'를 통해 법정스님은
불교계의 가장
대중적인 아이콘이되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출가한 스님이
세상을 향해 수필집을 낸다는건
과감한 도전이였습니다.
수행자이 구도심, 불교적 메세지, 수필가의 감수성
현대적 언어가 맞물리면서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서적으로 다가갔던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스님은 '선구자'였던 것입니다.
그분은 종교에도 마음이 열려있었습니다.
김 추기경과도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잠든 숲을 적시는 밤비소리처럼
그분은 맑고 향기로운 자연으로 돌아 갔습니다.
'밤비소리.를 그리워 하는
우리 곁을 떠난것입니다.
영원히...
靜波
- 2010. 3. 14 (월요일)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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