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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景山水 (1970) 종이에 수묵 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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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景山水 (1960) 종이에 수묵 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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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村 (1934) 종이에 수묵 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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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 진주담 (1974) 종이에 수묵 담채
 쌍벽담(雙僻潭) (1970) 종이에 수묵 담채
![내금강_보덕굴추색[1].jpg](http://blog.chosun.com/web_file/blog/241/241/11/%B3%BB%B1%DD%B0%AD_%BA%B8%B4%F6%B1%BC%C3%DF%BB%F6%5B1%5D.jpg)
내금강 보덕굴 추색 (1969) 종이에 수묵 담채
소정 변관식 1899~1978
1899년 황해도 옹진(甕津)에서 출생하였으며, 조선 왕조 마지막 화원이었던 소림 조석진(趙錫晉)이 외조부이다. 황해도 옹진 출신으로 1910년 11세 되던 해 서울로 올라와 조석진이 교수로 있는 서화미술원에 입학하면서부터 그림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후 1925년 일본에 건너가 일본의 수묵화풍을 접하기도 하였다. 귀국 후 전국을 돌아다니며 실경을 사생하는 등 새로운 화풍의 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여행을 통해서 얻은 실경에 대한 애착으로 향토색 짙은 독특한 실경산수(實景山水)가 발전하게 된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 관여하기도 했다. 년 국전심사위원으로 참가한 그는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혼탁한 파벌 싸움이 끊이지 않자 점심식사자리에서 냉면 놋대접을 집어던져 심산(心汕) 노수현(盧壽鉉)의 눈두덩을 찢고 말았다. 당시 '연합신문'에 국전심사의 불공정성을 폭로한 글을 기고한 후 그는 두번 다시 심사위원을 맡지 않고 재야 화가로서 화업에만 몰두하고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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