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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명기***/그때그시절에

선덕여왕지기삼사설화(善德女王知幾三事說話.선덕여왕설화)

*설향* 2009. 1. 29. 08:29

 선덕여왕지기삼사설화(善德女王知幾三事說話.선덕여왕설화)

【해설】

   신라 선덕여왕의 예지력(叡智力)과 지혜(智慧)로움에 얽힌 설화. 신이담(神異譚)에 속한다. <삼국유사> 권1 ‘기이편(紀異篇) 선덕여왕 지기삼사(善德女王知幾三事)’조에 수록되어 있으며, 세 가지 설화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설화는 선덕여왕이 불경이나 주역에 조예가 깊었음을 알려 주는 설화이다. 일연(一然)은 삼색 모란은 신라에 선덕ㆍ진덕ㆍ진성의 세 여왕이 있을 것임을 당제(唐帝)가 헤아려 맞춘 것이라고, 당제의 지혜와 선덕여왕의 지혜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세 가지 일화 중 '향기 없는 모란꽃'과 '개구리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도 비슷한 내용이 전한다. 다만, 모란꽃 이야기는 선덕여왕이 공주이던 시절에 아버지인 진평왕에게 말했던 것으로 소개되어 있으며, 개구리 이야기는 선덕왕 5년(636)에 여근곡이 아닌 옥문곡(玉門谷)에서 백제군사 500명을 섬멸한 것으로 적혀 있다.

   당시 당나라에서

선덕여왕지기삼사설화(선덕여왕설화) 문학감상

 

는 신라의 여왕제(女王制)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겨 신라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면 당나라 왕족 중 남자 한명을 보내주어 신라왕으로 삼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며 신라 내에서도 여왕제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으므로 위의 이야기처럼 선덕여왕이 예지력(叡智力)을 갖춘 비범한 인물임을 강조함으로써 논란을 종식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내용】

   『선덕여왕이 당(唐)나라 태종이 보낸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그 꽃에 향기가 없음을 미리 알았다. 그리고 그 때 함께 보내온 모란씨를 심어 꽃이 피었는데 과연 향기가 없었다. 신하들이 향기가 없음을 미리 안  이유를 묻자 여왕은 꽃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알았다고 하고, 그것이 홀로 사는 자신을 풍자한 거시이라 하였다. 또 겨울에 못(玉門池)에서 개구리가 삼사 일을 계속 울자, 그것이 적군이 어느 곳에 숨어 있다는 징조임을 알고 여왕은 군사들을 풀어 여근곡(女根谷)을 찾으라 했다.

   과연 그곳에는 백제군들이 숨어 있어 그들을 모두 무찔렀다. 뒷날 신하들이 미리 안 이유를 물었다. 여왕은 대답하기를  개구리는 노(怒)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은 병화(兵火)를 의미하는 것이요, 옥문(玉門)이란 여성을, 그리고 음(陰)을 상징하는데, 빛깔로는 흰빛이고 흰빛은 서방을 의미한다. 따라서 서쪽에 병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죽을 때는 자기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라는 절이 창건(創建)될 것을 미리 알았다.』


   『첫째는 향기 없는 모란꽃 이야기로, 당나라 태종이 붉은색ㆍ자주색ㆍ흰색의 세 가지 색으로 그린 모란의 그림과 그 씨 석 되를 함께 보내 왔다. 왕은 그 꽃 그림을 보고 그 꽃이 향기가 없음을 예언하였는데, 이듬해 핀 그 모란은 과연 향기가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몰래 침략한 적군을 미리 알아 섬멸한 이야기로,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는 겨울인데도 많은 개구리가 울어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리니 왕은 정병을 여근곡(女根谷)에 보내어 적을 섬멸하도록 하였다. 군사가 서교(西郊)에 가니 과연 여근곡이 있고 적군 5백여 명이 매복하고 있으므로 이를 섬멸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셋째는 왕이 자신의 죽을 날을 미리 안 이야기로, 왕은 생전에 자신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도리천(克利川)에 장사 지내 달라고 일렀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가를 물으니 낭산(狼山) 남쪽이라고만 답하였다. 왕은 과연 예언한 날에 세상을 떠나고 신하들은 낭산 남쪽에 장사를 지냈다.

   그로부터 10년 뒤 문무왕이 사천왕사(四天王寺)를 무덤 아래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 하였으니 그제야 예언이 적중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신하들이 세 가지 지혜의 해답을 물어보았는데 왕이 대답하기를, 모란꽃을 그리되 나비가 없으니 향기가 없을 것임을 알았고, 노란 개구리는 병사의 형상이며 옥문은 여자의 상징으로 음(陰)이며, 백색은 서쪽을 가리키므로 적군의 서방 매복을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첫 번째 이야기는 향기 없는 모란에 관한 일화이다.

   어느 날 여왕에게 당나라 태종(太宗)이 진홍·자색·백색의 모란이 그려진 그림과 그 씨앗 3되를 보내왔다. 여왕은 그림을 보고 "이 꽃에는 반드시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씨앗을 뜰에 심게 했다. 과연 꽃이 피어서 질 때까지 향기가 나지 않아 여왕의 예언이 들어맞았다고 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개구리 울음을 듣고 전쟁의 조짐을 미리 알아차린 일화이다.

   636년(선덕여왕 5) 겨울, 궁성 서쪽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 많은 개구리가 모여들어 삼사일을 계속 울어대자,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여왕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왕은 급히 각간 알천(閼川)과 필탄(弼呑) 등에게 정병 2,000명을 데리고 서쪽 교외로 나가 여근곡(女根谷)을 찾아가면 반드시 적병이 매복해 있을 것이라며 쳐부술 것을 명했다.

   각간 등이 군사를 이끌고 그곳에 가보니 부산(富山) 밑에 여근곡이란 골짜기가 있고, 그곳에 500명의 백제군이 숨어 있었다. 이에 이들을 모두 죽이고 남산에 숨어 있던 백제 장군 우소와 백제의 후원군까지도 모조리 쏘아 죽였다고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여왕이 자신의 죽을 날을 예언한 일화이다.

   어느 날 여왕은 신하들에게,

   "내가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죽을 것이니 도리천에 장사하라."

고 일렀다. 신하들이 도리천이 어딘지 몰라 물으니 낭산(狼山)의 남쪽이라고 했다. 여왕의 말처럼 그달 그날에 세상을 떠나자 신하들은 낭산의 남쪽 양지쪽에 장례했다. 그 후 10여년 뒤에 문무왕(文武王)이 선덕여왕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다. 불경에 사천왕천(四天王天)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선덕여왕은 자신의 무덤 아래에 사천왕사라는 절이 창건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여러 신하들이 어떻게 모란꽃과 개구리의 일을 알았는지 묻자, 여왕은,

   "꽃을 그렸는데 나비가 없으므로 향기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는 당나라 임금이 나에게 짝이 없는 것을 희롱한 것이다. 또, 개구리가 성난 모양을 하는 것은 군사의 형상이요, 옥문이란 여자의 음경인데, 여자는 음(陰)이며 그 빛이 희니 흰색은 서쪽을 상징한다. 그래서 적군이 서쪽에 있음을 알았고, 남근(男根)이 여근 속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