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에 속하는 193종 가운데 인류만이 매끈하게 돌출된 반구형 엉덩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한 미감을 일찍부터 알아차린 예술가들은 엉덩이를 작품의 주된 소재로 삼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이 바뀌듯 고대부터 현대 미술 작가에 이르기까지 엉덩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각기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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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마르트의 엉덩이 나이는 24세
초기 작품인 ‘휴식’(1900년)은 마르트가 누드로 침실에 누워 있는 모습이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침대 한 쪽 끝에서 얼굴을 두 팔로 파묻은 채 엎드려 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일까? 글쎄, 구부린 왼쪽 다리와 엉덩이에 살짝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 같지만은 않아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의 엉덩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내부에 원이 완벽하게 그려지는 정사각형 엉덩이, 호리병처럼 생긴 직사각형 엉덩이, 옆으로 퍼진 직사각형의 엉덩이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김새를 구분하는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듯하다.
싫고 좋음이 드러나는 얼굴과 달리 엉덩이는 속내를 드러내는 표정을 짓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봉긋이 부풀어 오른 엉덩이를 무심히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작품 ‘휴식’ 속에 누워 있는 마르트의 엉덩이 또한 아무 말도, 별다른 몸짓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보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야릇한 마력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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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달항아리展
우윳빛 투명한 빛깔도 그러하지만 둥근 대접을 두 개 맞붙여 구워낸 까닭에 가운데 이음새가 있고, 무엇보다 풍만한 곡선의 형태를 보면 영락없다. 그러나 한두 번 보아서는 달항아리의 미감을 알아챌 수 없다. 비슷한 사발 두 쪽이 만나 하나의 몸체를 갖추기 위해 가마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한쪽이 살짝 이지러진 그 형태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면 수십 번, 수백 번은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되살려내기 위해 20여 년간 노력한 박영숙 씨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조선시대의 것보다 훨씬 크고, 풍만함보다는 준수함에 무게를 두어 너비보다 높이를 좀더 크게 만드는 등 달항아리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Nude Back of Woman
Single Nud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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