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에 혼을 심는 배방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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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민 기자 kwaminlee@hotmail.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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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풍세면에 가면 3년 전부터 자신의 공방에서 우리의 전통 장승을 세워 ‘장승축제’를 여는 사람이 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청운(靑雲) 배방남(64세) 옹이다. 37년 동안 장승을 깎아온 배방남 옹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를 따라 한국으로 건너와 18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공예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군 제대 후 1967년부터 천안에 거주하면서 전통 공예의 맥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는 배방남 옹은, “할아버지는 석공예를 하셨고 아버지는 금속공예를 하셨어요. 아버지 친구 분은 유명한 석공이셨구요. 그분들에게서 자연스레 공예 일을 배우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니, 3대째 전통 공예 일을 하고 있는 장인이다.
탈을 만들어 일본에 팔러 다니던 시절, 우리의 백제문화가 일본에서 마치 일본의 것인양 있는 것을 보게 되었고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그는 “우리의 백제문화가 일본에 있는 것이 마음 아팠어요. 분명 우리것인데 우리 땅에는 없고... 그래서 백제 문화 복원이라는 큰 뜻을 가지게 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전통문화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장승에 매료되었고 이때부터 장승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장승이란 마을이나 절 입구, 또는 길가에 세우는 사람머리 모양의 기둥을 말하는 것으로 20년 전만해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새마을 운동과 미신타파 운동 등으로 없애거나 방치하여 많이 사라졌다.
장승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마을의 안녕과 나라의 평안, 사악한 기운을 물리쳐 재액을 막기 위함이라는 설이 가장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장승은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으며, 장승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장성. 장승, 벅수, 법수, 당산 할아버지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했다.
지금은 배방남 옹이 만든 장승이 한국의 집, 안면도 꽃 박람회장 장승공원,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등 우리나라 여러 지역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동남아 지역까지 분포될 정도로 인정 받는 장승 조각가지만 어려움 또한 많았다고 한다. “내 민족사를 위하고 민족문화를 위해서 고통과 시련을 겪으면서도 백제문화를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고생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교육을 통해 후손들에게 우리의 토속문화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라며 힘들었던 지난날을 회상하 듯 말한다. “우리 후손들에게 제대로 우리 토속문화를 전해주기 위해 이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내 생활을 위해서라면 벌써 딴 짓 했을 거예요.”라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배방남 옹은, “우리는 우리 토속문화를 후손들에게 올바르게 물려줘야 합니다. 그래서 장승축제를 시작하게 된거구요.”라고 말한다. 2000년 2월 제 1회 장승축제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5회를 마친 배방남 옹은, “내가 어릴 때부터 장승을 많이 보고 만져보고 느껴왔던 것처럼 후손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갖게 해줘야겠다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지요. 토속문화가 점점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한 끝에 시작한 겁니다.”
지난 1998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여 장려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석장공예 부문 무형문화재 기능인 선정 심사 중에 있으며 요즘은 공예대전에 출품할 작품 작업으로 분주하다. “국전에 참가하는 이유는 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작품이 출전함으로써 우리 문화를 후손들이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 출전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배방남 옹 자신이 이토록 우리의 토속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는 우리 후손들에게 전통문화를 올바르게 물려주기 위함이라며, “이 일은 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교육이 있는 곳이라면 맨발로라도 뛰어갈 겁니다. 우리의 토속문화가 제대로 알려만 진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니까요.”라고 말한다. |
따뜻한 숨결 ‘백제의 미소’ 지킴이 |
백제 명장 명맥 잇는 공예가 배방남씨… 나무 깎고 돌 다듬고 ‘40년 외길’ |
2시간 남짓 차를 달린 끝에 충남 천안시 풍세면 보성리 국도변에 자리잡은 ‘민학전가’(民學傳家)의 소박한 팻말과 마주쳤다. 나지막한 돌담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자 십수 세기를 뛰어넘은 백제 석불이 순박하고 따스한 웃음으로 주인보다 먼저 객(客)을 맞는다.
500평 들판엔 꽃처럼 만발한 ‘난쟁이 장승’이 석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앙증맞은 표정을 짓는다. 상모 쓴 장승, 혀를 쏙 내민 장승, 놀란 표정의 장승이 한껏 익살맞은 얼굴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들.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는데 객을 알아본 주인이 저만치서 걸어 나온다.
“전국 아무 데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무시무시한 장승이 안 보이지예? 여기 있는 건 죄다 ‘눈높이 장승’ 아입니꺼.”
민학전가의 주인장이자 전통공예가인 배방남씨(60)가 필자의 궁금증을 눈치챈 듯 먼저 말을 꺼낸다. “언젠가 아버지 손 잡고 구경온 대여섯 살 꼬맹이가 목이 아파 장승을 못 쳐다보겠다고 투정을 부리는 기라예. 그때부터 애들 눈높이에 맞게 작달막한 장승을 깎았다 아입니꺼. 그 후로 아이들이 오면 장승 수염을 잡아당기고 머리도 쥐어박으면서 재미나게 구경합디더. 이게 바로 산 문화공부지예.”
5년여의 준비 끝에 재작년 문을 연 민학전가는 말 그대로 ‘백성이 배우고 전하는 집’이다. 배씨의 작업장과 더불어 그가 집념 끝에 재현한 백제 마애불이 어우러진 이곳은 수시로 들러 전통문화의 숨결을 느끼고 직접 공예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40여 년 동안 전통공예가의 외길을 걸어온 그가 민학전가를 열고 백제문화 재현과 전수에 안간힘을 쏟게 된 계기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 제대 후 먹고 살 길이 막막해 공예는 뒷전으로 하고 자잘한 조각품을 깎아 근근이 생활했지예. 일본 민예사를 드나들며 몇 점씩 팔아 생계를 꾸렸는데 이때 마쓰모토·구마모토·나가노가 등지를 돌며 백제문화가 산재해 있는 걸 목격했어예. 그런데 일본에는 있는 백제시대 목불이 한국에는 없는 기라예. 그때부터 백제문화를 재현해 후손에게 물려줘야겠다고 작정했십니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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