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종환
가지 않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은 없었다
몇몇 길은 거쳐오지
않았어야 했고
또 어떤 길은 정말
발 디디고 싶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모든 길을
지나 지금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한 번쯤은 꼭
다시 걸어보고픈 길도 있고
아직도 해거름마다 따라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길도 있다
그 길 때문에 눈시울
젖을 때 많으면서도
내가 걷는 이 길 나서는 새벽이면
남모르게 외롭고
돌아오는 길마다 말하지 않은
쓸쓸한 그늘 짙게 있지만
내가 가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 어떤 쓰라린 길도
내게 물어오지 않고 같이
온 길은 없었다
그 길이 내 앞에 운명처럼
패여 있는 길이라면
더욱 가슴 아리고 그것이
내 발길이 데려온 것이라면
발등을 찍고 싶을 때 있지만
내 앞에 있던 모든 길들이 나를 지나
지금 내 속에서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엔 안개 무더기로
내려 길을 뭉턱 자르더니
저녁엔 헤쳐온 길 가득
나를 혼자 버려 둔다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
오늘 또 가지 않을 수 없던 길